<2022년 9월 25일 주일예배>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가복음 2:1~12) >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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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2022년 9월 25일 주일예배>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가복음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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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성한미교회
댓글 0건 조회 688회 작성일 22-10-07 12:32

본문

오늘 본문에는 중풍병자가 등장합니다. 

네 사람이 들것으로 실어 옮겨야 할 정도로 중한 병이었습니다. 

3절에 보면 이 사람을 치유의 길로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의 고통과 절망을 가까이서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병자를 위해,‘무엇인가 해야 되겠다.’라는 부담감과 책임의식을 가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디에서부터 일어납니까?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4절을 보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것을“그들의 믿음”으로 평가합니다. 믿음은 길을 냅니다. 사람이 많아서 입구가 막혀있으니 옥상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들것을 주님의 머리 위로 내리고자 합니다. 그들은 변상을 할 각오로 모험을 시작하였습니다. 

믿음과 모험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주님께 가기만 하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험을 하게 되고, 믿음은 행동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믿음은 장애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합니다. 

그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절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친구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중풍병자를 살리려고 하는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친구들의 역할입니다. 중풍병자는 지금 누워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탓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무기력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누워있는 중풍병자는 어떻게 보면 오늘 죄인 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들것에 실어 주님이 계신 곳으로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똑같은 신세로 살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군가 도와줘야 합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다가가야 합니다. 들것에 실려 갈 정도로 비참한 운명에 놓인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중풍병자가 누린 최고의 축복은 중풍병에서 나은 것이 아니라 그의 곁에 있던 친구들입니다. 어려움을 뛰어넘어 주님에게로 인도해준 친구들이 있어 그의 불행이 끝이 난 것입니다. 절망적인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도울 수 있는 친구가 아무도 없다는 현실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믿음의 동역자가 옆에 있습니까?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교회가 네 친구들과 같은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나 혼자 이렇게 여기까지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셀 수 없이 방문하고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준 손길이 있었기에 우리가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가기만 하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일을 해낸 것입니다. 

난관을 극복하고, 위험한 모험을 시도하고, 욕을 먹을 각오도 하고, 그들은 친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쏟았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잠시 여러분들의 주변을 한 번 자세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고통하는 이웃을 살려내고자 하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본문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같은 일들이 동일하게 일어나게 되길 간절히 소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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